2019년 4월 29일 월요일

[여행기] 아프리카 여행 - 이집트, 신을 믿는다는 것 (Egypt)

<이집트 카이로, 시내버스 안>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정신을 바짝 부여 잡았다. 그 이유는 공항택시 기사의 현란하고 끈질긴 권유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였다. 이집트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건 일상적이고 그중에 공항택시 기사는 최강이라는 소문을 미리 들었기 때문 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입국장으로 나오자 마자..  "짜이나?" "꼬리아?" "재뺀?" 어떻게든 말문을 트기 위하여 이야기를 걸어오는 택시기사들 사이를 뿌리치고 나오기가 힘들었다. 힘들게 찾아간 버스정류장에서 물어물어 겨우 카이로 시내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탑승 하였다.

지금까지 질서정연한 유럽을 여행 하다가 갑작스레 겪은 카이로는 그야 말로 카오스 그 자체 였다. 수많은 낡은 차들은 경적 소리를 쉼없이 불협화음 연주를 해대고 있었으며 , 도로에는 횡단보도 없이 눈치껏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버스의 정류장 표시는 찾아볼수 없었으며 어느순간 버스가 천천히 가고 있으면 역시 적당히 눈치껏 해당 버스에 올라타거나 내리고 있었다. 짐이 많아 걱정이었으나, 다행히도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속도가 줄어든 버스에서 살짝 뛰어내리며 무사히 착지 할수 있었다.

 <이집트 후루가다, 홍해 바다>

 혼돈의 카이로는 잠시 뒤로 하고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곳은 홍해바다를 즐길수 있는 '후루가다' 라는곳 이었다. 이집트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후루가다에 최고급 호텔,리조트 시설이 들어설수 있도록 지원한 도시로 이집트 내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속한다. 물론 나는 최고급 호텔에는 머무를수가 없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로 한국분이 운영하는 한인민박 숙소에 머무르면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코스를 시작 하였다.

<이집트 후루가다, 석양>

 매일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다이빙을 하고 적당히 피곤해진 몸으로 돌아오는길에 바람을 맞으며 보는 이집트의 찬란한 황금빛의 석양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집트 후루가다, 홍해바다에서의 다이빙>

 다이빙은 나에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게 해주었다. 잠시나마 경험한 수중세계는 무척이나 고요 했으나 각기 다른종의 수많은 수중생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온 신경을 빼앗기게 되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오직 나의 호흡뿐인 수중세계에서 어쩔때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어쩔때는 내가 물고기가 되어 바다의 일부분이 되는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였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들은 수없이 많았고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경험할때 마다 나의 경험과 감각의 지평이 확실히 넓어지는것을 느낀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건강한 호기심을 죽는날까지 놓고 싶지 않다.


                                  <이집트 바히리야 사막>

 홍해바다 이후에 탐험한곳은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었던 사막 이었다. '바히리야' 는 '바다'라는 뜻으로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바다사막' 이란곳으로 아주 예전엔 실제로 바다 였다가 지금은 이집트내 사막지대로 남아 있는곳 이라고 한다. 실크같이 고운모래가 깔린 사막이외에도 흑사막, 백사막이라고 불리는 다채로운 지형을 탐험하고 하루 일박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이집트 바히리야 사막, 저녁캠핑>

 이집트 사막탐험을 위해서 이집트 현지인 '모마'라는 친구가 한국인들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투어를 이용 하였으며, 처음만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이었으나 추운 저녁에 모닥불 사이에 앉으니 금새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이집트 바히리야 사막, 은하수>

 동행했던 일행중에서 사진작가분이 계셔서 사막한가운데 저녁에 촬영한 멋진 은하수 사진을 공유해 주셨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 사막여우의 숨죽인 발자욱 소리, 모대언덕에 누웠던 나의 등에서 느껴진 푹신하도고 차가운 모래들과 하늘 어디를 둘러봐도 가득하던 백색에 가까운 푸르른 수 많은 별빛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다른별에서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저 수많은 별빛들 가운데 하나겠지? 그 작은 별빛속의 부스러기속에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감히 자만 해질수 없는 저녁 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아즈하르 모스크>

 이집트를 떠나기전 카이로에 있는 무슬림 사원인 아즈하르 모스크에 방문 햇었다. 지정학적으로는 아프리카 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중동이라 할수 있는 이집트의 90%는 무슬림 이었다. 절제된 건축미를 자랑하는 이 모스크는 무슬림의 경건한 예배의식과 어우러져 절로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집트 카이로, 무카탐 쓰레기 마을>

 모스크에서 우버를 불러서 간곳은 이집트내에게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무카탐의 쓰레기 마을로 불리는 곳 이었다. 이 마을의 대부분의 주민은 기독교인으로써 무슬림으로 부터 박해를 피해 이곳에 온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집트의 기독교는 '콥트교'라고 불리며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와는 또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마을 진입구에 차가 들어서자 마자 코를 찌리는듯한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도로는 차량이 지나가기엔 너무도 좁은 울퉁불퉁한 길과 양쪽의 무너질듯한 낣은 건물들이 수두룩 하였다. 무슬림 이었던 우버기사도 처음온곳 이라고 하며 긴장한 모습으로 운전대를 꽉 쥐었다.

 마을 언덕에는 동굴을 깍아서 만든 중동 최대의 동굴교회가 있었으며, 우버기사가 진입할때 내가 관광객 이어서 왔다가는 설명을 진땀 빼게 해야 되었다. 아마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콥트교 사이에 충돌.. 아니 일방적인 박해가 종종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집트 카이로, 무카탐 성시몬 수도원>

 마을의 꼭대기에 동굴을 깍아서 만든 성시몬 수도원은 중동 최대의 교회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 규모가 어마 했다. 바위를 깍아내어 수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공간을 만든 종교의 힘이 새삼스레 대단하게 느껴 졌다.

마을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가는길에 우버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작스레 나보고 신을 믿는냐는 질문을 한다. 그렇지 않다는 나의 대답에 이해가 되지 않는듯이 깜짝 놀라며.. 신을 꼭 믿어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그래도 알라를 믿어라는 이야기 보다는 신 자체를 믿어라고 이야기한 그 친구의 마음의 진실하게 다가 왔다.

공항에 도착할때 까지 어느새 친해진 우버기사에게 가족과 미래의 안녕을 빌어주는 인사를 하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치면서 대답 한다.
" 인샬라 (Inshallah) "

아직도 잘 모르겠고, 나에게는 풀리지 않은 난제 이다. 
"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것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의미 일까 ? "

2019년 4월 28일 일요일

[여행기] 유럽여행 -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리스 아테네 (Hungary Budapest, Greece Athens)

<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내 > 

 헝가리를 오겠다고 결정 했었던 이유는 부다페스트 라는 유서깊은 도시와 사진으로 보았던 멋진야경이 한 몫을 하였던것 같다. 이렇게 나의 첫번째 동유럽 여행지가 된 이 도시는 건물들은 통일된 양식으로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도로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도로는 평평한 평지에 충분히 넓어서 시원스러움이 돋보였다. 마치 각 잡힌 제복을 입은 장교와 같은 단정함과 절제된 느낌이 나에겐 인상적 이었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Donau)강에서 바라보는 국회의사당 > 

 이 도시는 도나우(Donau)강을 사이에 둔 부다(Buda)와 페스트(Pest)라는 두 도시가 통합이 되면서 부다페스트(Budapest)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부다에는 주로 왕족과 귀족들 같은 지배층이 살았었고, 페스트에는 주로 서민들이 거주를 했었다고 한다. 마치 서울을 강남,강북으로 구분하여 부자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로 구분하는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것 같다. 그 형태가 바뀔뿐이지 우리는 계속 서로를 구분지어 살려고 노력 하는것 같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

 도시 이곳저곳을 충분히 걷고 느낀후 피곤이 쌓였을때,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코스중 하나인 온천으로 향했었다. 총 세군데의 유명한 온천이 있었으나 나는 도시전경을 바로보며 반신욕을 즐길수 있는 루프탑으로 유명한 루다스곳에서 오랜만에 따뜻한 여유를 즐겼었다.

                        <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야경 >

 저녁엔 도시야경 관람을 위해서 유람선를 탑승 했었는데, 유럽의 야경중 손에 꼽힌다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명불허전 이었다. 단정하게 아름다운 부분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은 소란스러움이 없는 정제된 화려함이 있었다.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마한 사치에 재충전 한 후 도착한 곳은 신화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 였다. 단순 역사적인, 유서깊은 도시가 아닌 신화의 도시라니.. 도시를 표현하는 스케일 부터가 달랐다. 오래된 묵은지 김치가 깊고 오묘한 맛을 내듯이 이곳도 낡고 오래 되었지만 오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신화에 대한 호기심, 믿음 등이 신비로운 상상력을 부추기는게 아니었을까?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

 최근 그리스 경제가 좋지 않아져 어느정도 저렴한 물가를 기대 했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답게 가이드를 대동한 투어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비용문제로 가이드 투어를 하지는 못하였으나 도시를 거닐며 그리스 신화의 옛신들의 이야기를 혼자서 더듬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 있었다. 도시위를 무리지어 나르는 까마귀떼만 보아도 "혹시 어떤 신의 계시일까?" 하고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은 이 도시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

< 그리스 아테네, 일출 >

그리스를 더 탐험 해보고 싶었으나 미리 예약해둔 항공권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짧은 일정을 뒤로하고 공항에서의 일출과 함께 또다른 신화의 나라인 이집트로 향했다.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여행기] 유럽여행 - 프랑스 노르망디, 프랑스 사람들 (France, Caen and Strasburg)


        <프랑스 캉, 시내 야경>

 유럽 남단을 여행하다 한번에 프랑스 북쪽의 노르망디 지역을 향하니 급작스럽게 낮아진 기온에 적응이 잘 안되었다. 그리고 추운지역 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특유한 냉랭한 표정 조차도 어색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장 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각 지역별 나라별 로 다채로운 표정을 극명하게 볼수 있는것이 흥미로 웠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비행기 그리고 전철을 타고 시내까지 간 다음에 미리 예약해둔 버스를 2분 차이로 놓치고 난뒤, 그 뒤의 버스를 다시 애매해서 어렵사리 도착한 '캉(Caen)' 이라는 도시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의 중심지로 그렇게 알려진 도시는 아니었으나, 에딘버러 어학원 수업첫날 만났던 프랑스 친구인 필(Phil)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프랑스 캉, 축구 경기장 에서>

 전직 AS모나코 축구팀의 계약 선수 답게, 만나자 마자 캉에서 열리는 축구경기장에 데려 갔었다. 놀랍게도 이 친구의 나이는 열아홉으로 작년에 계약연장이 되지 않아 과감하게 축구를 그만두고 지금은 러시아어를 전공 하고 있다. 유투브에 Asphi 라는 닉네임으로 프렌치 힙합 뮤직도 하는 스타일과 멋을 추구하는 그리고 승부욕이 강한 친구 이다.

지금은 학교에 앉아 단순 공부하는것은 본인과 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비행승무원이 될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무언가 되지 못하는 순간 세상이 끝나는듯한 충격에 휩쌓였을 텐데... 이 친구는 유연하고 쿨하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것을 끊임없이 추구 한다.


<프랑스 노르망디, 근처의 추모공원>

 다음날 오전 일찍 차를 타고 출발한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격전지 였던곳 중 하나인 노르망디 해변 이었다. 녹색 풀밭의 하얀 십자가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사망군인의 이름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이름이 새겨진 하나의 십자가는 비극적이게도 정말 끝이 안보일정도로 펼쳐져 있다. 감히 숫자를 셀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전쟁이란 비극의 희생자들의 흔적앞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 졌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

 노르망디 지역의 짧은 일정을 뒤로 하고 유럽여행의 출발지 였던 친구네 집인 스트라스부르로 복귀 하였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방문으로 아마 유럽에서 제일 많이 방문 했던곳이 아닐까 ?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로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분방함과 독일 특유의 질서정연함이 절묘하게 조화된 방문할때 마다 기분좋아 지는 도시중 하나 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 올려면 아직 한달이나 남았으나 예쁘게 치장된 크리스마스 마켓이 미리 오픈되어 한창 들뜬 분위기 였다. 초저녁의 차갑고 청량한 공기와 푸르르지 못한 애매한 하늘색 그리고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소리가 어우러진 오랜만에 설레이는 밤 거리 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떠나고 나서 일이주 뒤에 이곳에서 총기테러가 발생 했었다. 다행히 친구는 아무 피해 없이 무사했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누군가를 죽이려 시도 했었던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친구 집에서>

 친구 익현이네 집에서 나보다 먼저 여행을 떠났던 규환이와 그리고 익현이의 몇 아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처음만난 사람과 식사하는 자리가 많이 생기는데 어색하지 않게 서로를 소개하고 소통 하는게 자연스러워 진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이 오픈마인드의 소유자일 확률이 높다는건 이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쌓여진것 일것 이다.


많은 이야기와 음식 그리고 술이 오갔던 밤에 살짝 달아오른 기분으로 유일한 프랑스인 이었던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인생의 목적이 뭘까? 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

농담이 오갔던 자리에서 나온 뜬금없는 질문 때문에 터져나온 헛웃음들 가운데 그 프랑스 친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친구의 통역에 의하면,

"프랑스에는 이런 속담이 있어.. 즐겁기 위해서 뛰는게 아니라 즐거우니까 뛰는거다"

어떠한 정해진 목적을 찾아서 인생을 살아내는게 아닌.. 내 자신이 원하는데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하는 그 순간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의 의미가 될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았다. 설혹 실패하고 후회 하더라도.. 원하는것을 알고 행하는 그 자유를 인생에서 누릴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각기 개인철학이 뚜렷하고 인생의 방향키를 온전히 움켜진 사람으로서의 당당함이 있다. 자기의 인생들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이 멋지고 사랑 스럽다고 느껴지는 밤 이었다.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여행기] 유럽여행 - 포르투갈, 혼자 여행 한다는것 (Portugal, Porto and Lisbon)



                                                       <포르투갈, 포르투 광장>

 바르셀로나 이후의 일정은 포르투갈에서 혼자하는 여행 이었다.
일정상 이른시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포르투갈의 포르투는 조용히 가라 앉아 있어고, 무엇보다 그동안의 지중해의 포근함 대신 대서양의 거친습기가 나를 맞이 했었다.

미리예약 해둔 호스텔에 짐을 풀고 도시 이곳저곳을 많이 걸었다. 오랜만에 친구 없이 혼자 여행 하려니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아직은 혼자 여행할 준비가 안되었나 보다.
내가 원하는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실행하며 거기에 즐거움과 보람을 온전히 느끼는것이 혼자하는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

아직까지 나의 여행은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체 정처없이 걷는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야경>

 저녁에는 포트와인 투어를 신청하였다. 포트와인의 본고장인 이곳 포르투에서 제일 기대했던것 이기도 하였다. 
포트와인(Port Wine)은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당시 영국에서 자국의 와인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이곳 포르투에서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 했는데, 일반와인이유통기한이 당시의 해상운송 기간을 감당해내지 못하여서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서 알콜도수가 높은 포트와인을 만들어 낸것 이다.

도시에 있는 작은 양조장 사이를 거닐며 묵직한 포트와인을 한두잔씩 시음하다 보니, 서먹하게 투어를 시작했던 사람들 과 어느새 기분좋게 소통하게 되었다.

도오우(Douro)강을 가운데 두고 펼쳐진 이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포르투칼의 리스본으로 향 하였다

                                      <포르투갈, 리스본>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포르투 보다는 웅장한 느낌이 강한 리스본에 도착 했다. 과거의 유럽의 식민지 시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 했었던 예전 대국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현재는 유럽내 다른나라 대비 비교적 저렴한 물가로 인기있는 관광국가 이나, 대서양을 통해 최초의 동서양 무역로를 개척 하면서 부를 많이 축적 했었던 나라 이었다.

빈티지한 건물이 많았던 포르투와 다르게 유달리 새로운 건물들이 많았었는데 알고보니 1755년에 리스본에 큰지진이 일어나, 당시 건물의 85%가 파괴되고 도시인구의 약 20%가 사망 했었다고 한다. 자연재해의 그 무자비함의 크기에 오싹 하면서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재건한 인간의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 졌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본 대서양>

 과거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 바다가 쓸쓸하게.. 어쩌면 허무하게도 느껴졌다.

저녁에 호스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려다 보니, 추수감사절이라 몇몇 미국인 친구들이 식당의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여 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덕분에 불편하게 식당 한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데, 큰소리로 떠들고 웃어대는 그들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다른 호스텔과 마찬가지로 서로 모여서 술과 음식을 나누고 있을뿐이고, 나에게 피해를 준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안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무엇일까? 소외감은 아니었다. 딱히 그자리에 같이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데로 행하고 있었으나, 나보다 더 즐겁거나 행복한 사람들을 보고 상대적으로 내가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들.
스스로에게 비웃지 않을수가 없었다. 항상 나만의 길을 가자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남들에게 쉽게 영향을 받는다니..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 그리고 가치관 들도 온전히 '나'로써 만들어 낸것이 아닐수도 있겠다. 내가 타인에게 쉽게 영향받는 다는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휘둘리지 말아야 겠다. 그리고 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연습 해야지.

이렇게 오랜만에 혼자인 여행은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들과 함께 지나가고, 이제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노르망디 해변으로 향했다.

[에필로그]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오다.

<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서, Egypt Bahriya Desert >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훌쩍 퇴사를 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