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8일 토요일

[여행기] 남미여행 - 리우데자네이루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Brazil Rio de Janeiro, Argentina Buenos Aires)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숙소 가는길 >

아프리카에서 남미로!!! 대륙간의 비행이동은 무언가 특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더구나 남미는 나에게 하나의 로망 이었으므로 심장의 두근거림과 설레임은 한층 더해져서 긴 비행시간을 비교적 잘 버티어 냈었던것 같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환승하면서 느낀 브라질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공항 인프라가 좋았다는 것 이다. 으레 가난한 남미에 대한 전형적인 선입관이 보기 좋게 깨졌다. 알고보니 우리나라 보다 GDP순위가 높은 세계 10위권안의 경제대국 이었던 것이다. 역시 발로 뛰며 보고 듣는 정보의 깊이는 달랐다.

상당히 높은 GDP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저렴한 물가는 여행자의 나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신난것 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상당한 빈부격차가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셀라론 계단 >

 저녁늦게 도착하여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찾아간곳은 도시 관광명소중 하나인 '셀라론 계단' 이란곳 이다. 칠레의 예술가인 호르헤 셀라론(Jorge Selaron)이 본인이 리우에 살던 빈민가의 허름한 계단을 타일로 장식하여 만든곳으로 약 23년 동안 걸쳐서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예술적 집념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엄청난 인파를 피해 계단의 꼭대기쯤 다달아서야 조금은 여유로운 공간을 찾았고, 한줌 나무그늘 아래 노래하는 길거리 음악가의 노래를 들으며 '브라질리안 소울'을 느낄수 있었다.

그 소울은 따가운 햇볕에도.. 그리고 절망적인 빈민가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강렬한 자유의 목소리 였다.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

 숙소와 해변을 왔다갔다 하며 빈둥거리며 장시간 이동의 피로를 풀고, 이 여유가 서서히 지루함이 되어갈때쯤 도시의 상징인.. 아니 브라질의 랜드마크라고도 할수 있는 예수상을 보러 코르코바두산에 갔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올려다본 예수상은 실로 거대하고 웅장 했었다.
도시에서 이 예수상이 보이는 지역은 부자들이 살고, 정작 이 예수상을 제대로 바라볼수 없는 뒤편엔 빈민가인 '파벨라'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더구나 관광객들에게 '파벨라 투어'라는 관광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니...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수 없는 현상 이다. 왜 빈민들이 사는 동네가 체험을 해야 하는 관광상품이 되어야 할까 ?
밑에서 한없이 올려다본 표정의 예수상의 얼굴엔 근심 그득한 그림자가 드리우져 있었다.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 궁(Casa Rosada) >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쳐 방문한 나의 아르헨티나 첫 방문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였다. 1960년대까지는 그래도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 이었음을 잊지 않으려는듯 도시 곳곳에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하여 지금은 경제가 붕괴되다 시피 하여 특유의 침울함과 무기력함 또한 느낄수가 있었다.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 에서는 3주동안 머무르면서 호기심 가득히 하고 싶은것을 많이 해보았던것 같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로 못한상태로 홈스테이 해보았고, 소통의 부재에 좌절하여 근처 스페인어 학원에 2주동안 수업을 받아보았고, 탱고 수업도 받아 보았고, 채팅으로 현지친구 만나보기, 스카이 다이빙, 우루과이 당일치기 여행 등.. 낯을 가리는 성격인 나에게 저런 새로운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시도할수 있는 동기는 무엇 이었을까? 그리고 그 에너지를 한국에 와서 어떻게 유지할까 ? 아직도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중 이다.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2019년 1월 1일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홈스테이 생활을 하면서 정말 좋은 가족들을 만났다. 사진의 가운데 있는 중년여성의 이름은 Marta이며 나의 홈스테이맘 이었다. 항상 적극적으로 나에게 스페인어를 알려줄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귀여운 아기 손녀까지.. 이들 가족은 라틴문화권에서 가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나에게 몸소 보여주었으며 아직도 그들의 따뜻함이 추억속에 강렬히 남았다. 새해 첫날을 이들 가족과 보냈던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 아닐수가 없었다.

2019년 1월 1일 00:00 시가 되던때에 우리 모두 "Happy New Year"라고 외치며 서로를 따뜻히 않아 주었고 작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행했다.

" 자유의지로 살아갈수 있기를 "
" 평범한 일상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낄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
" 진심으로 사랑하고 표현하고 발견할수 있는 내가 되길 "

불이 타버려 재가되어 날라간 나의 저 문장들이 나의 마음에 닿았기를 바래본다.

[에필로그]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오다.

<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에서, Egypt Bahriya Desert >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훌쩍 퇴사를 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 왔...